동상

저의 동상은 예술가 ‘엘리 발투스(Elly Baltus)’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현재와 과거를 동서양, 양 측면에서 특별하게 묘사하였습니다. 1988년 8월 26일, 당시 네덜란드에 사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윤억섭’ 주네덜란드대한민국대사가 이 동상을 제막하였습니다. 동상의 받침대에는 이 동상을 세울 수 있게 도와주신 후원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몇 년 후, 엘리 발투스는 두 번째 동상을 제작하였습니다. 1991년 5월 5일 당시 네덜란드 경제부 장관 ‘이본 반 로이(Mrs. Yvonne van Rooy)’가 ‘서울 어린이 대공원’에서 그 동상을 공개했습니다. 동상을 통해 그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jjw seoel

 

 

Artist Elly Baltus

elly baltus처음 ‘흐라프트-드 레이프(Graft-De Rijp)’시에서 저에게 얀 얀슨의 동상 제작을 부탁했을 때, 이 일은 제게 큰 과제였어요. 생존 당시 그의 사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벨터브레이가 묘사된 유일한 자료는 그가 조난 당한 지 25년 후에 쓰인 하멜 표류기뿐이었습니다. 이 표류기에는 얀 얀슨의 이름과 역할이 실려있습니다. 하멜은 책에서 얀 얀슨이 조난당한 일과 어떻게 한국에 상륙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어설픈 네덜란드어로 자신이 무기 분야의 전문가로서 도지사 자리까지 올랐다고도 했습니다. 또한 표류기에는 얀의 외모에 대해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는 키가 컸고, 긴 붉은색 턱수염을 가졌으며 한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다.” 어쨌든 저는 이 문장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특히 역사와 전기에 관심을 가집니다. 벨터브레이가 ‘드 레이프(De Rijp)’출신임과 그가 일본으로 가는 길이었음은 네덜란드와 서유럽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한국에서 ‘박연(Pak Yon, 벨터브레이의 한국 이름)’은 영웅이고, 그가 한국의 위해 해온 일로써 그의 역사가 결정됩니다. 저의 과제는 두 문화를 하나의 형상으로 연결하여, 모두가 이 동상을 통해 역사의 한 면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관객들이 매력적인 형상의 조각을 통해 얀 얀스 벨테브레이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얀 얀슨 벨테브레이의 전기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관객들이 작은 상상력으로 그의 인생을 시각화할 수 있는 단서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모든 인간의 전기는 그 생애의 재구성을 촉발하는 기억과 흔적들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얀 얀슨 벨테브레이(Jan Janszn Weltevree)’의 전기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무역과 해상 운송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가 무기 고문으로서 한국에서 가졌던 지위에 관련되어 있기도 합니다. 구성요소를 갖춰 동상을 제작하는 것은 이러한 이야기를 발산하는 분위기를 창조해야만 합니다. 보트들, 돛, 도르래, 무기들, 동양의 우산, 현재와 과거의 상품 역시 이 동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관람객들은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이 동상을 통해 얀의 실제 외모를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이 동상에 쓰인 요소들, 의복과 외형은 그 시절을 살았으며 오늘날을 살고 있는 얀 얀슨 벨테브레이의 모습을 (오늘날 무역과 관련된 카메라와 라디오를 통해) 형성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역사적 인물을 마주할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스스로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 당시에 네덜란드 사람으로서 한국에 산다는 것은 어땠을까?”


제가 서울 어린이 대공원에 그 동상을 보러 갔을 때, 많은 한국인들이 얀 얀슨 벨테브레이(박연)을 익히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인들은 모두 박연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서서 동상을 감상하고 있었고 사진을 찍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은 동상의 오브제 역시 눈여겨보았습니다.


얀 얀슨는 마주한 상황에 잘 적응해낸 다문화인이라고 갈무리하겠습니다. 또한 그는 진취적이었고 여행을 자주 했습니다. 마치 요즘 많은 청년들처럼 세계일주 여행가였습니다.